목차
혹시 병동에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간호조무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 사이, 함께 일하는 동료인데도 왠지 모르게 말 못 할 거리감이 느껴지던 순간. 분명 같은 팀인데, 왜 이렇게 미묘하고 어려운 관계일까요? 20년 넘게 병동 교대 근무를 하며, 수많은 환자를 만났지만, 때론 환자보다 더 어려운 상대가 있었습니다. 오늘은 그 '미묘한 관계' 속에서 제가 어떻게 '진짜 어른'이 되어갔는지 솔직하게 풀어낼까 합니다.
3-4년 차, 이제 막 병원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이었을까요. 나이트 근무의 꽃이자 가장 숨 가쁜 시간, 데이 출근 전 5시-6시. 간호사, 간호조무사 할 것 없이 모두가 각자의 일들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고, 특히 간호사는 인계 준비로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함께 근무하던 간호조무사님은 저보다 한참 연배가 높으신 베테랑이셨죠. 저는 환자분의 환의 교환 지시를 드렸습니다. "조무사님, OOO 환자분이 좀 전에 환의 교환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의 차가운 한마디였습니다.
"그 정도는 선생님도 하실 수 있지 않나요?"
순간, 머리가 멍해지고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황스러움, 그리고 이내 밀려드는 섭섭함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말 한마디 섞기도 싫을 정도로 서운한 마음이 컸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하는 생각만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니 제가 참 미숙했구나 싶습니다. 그 조무사님은 그 바쁜 시간에 이미 제가 지시했던 환자의 환의를 탈의까지 하고 다음 업무로 넘어가려던 순간이었는데, 눈치 없이 그분의 숨통을 조이는 듯한 멘트를 날렸던 거죠. 상대의 입장에서 조금만 더 헤아려봤다면, 어쩌면 그 순간의 미묘한 냉기는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뒤늦게 찾아왔습니다.
그날의 당혹감과 섭섭함이 쉬이 가시지 않던 며칠을 보냈습니다. '내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이었나?', '겨우 환의 교환 하나 시켰다고 저렇게까지 말할 일인가?'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죠. 그때는 그저 '간호조무사 선생님은 간호사를 보조하는 역할인데, 왜 저렇게 반응하셨을까?' 하는 삐딱한 마음이 앞섰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그 사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비단 그 조무사님만의 문제가 아니었더군요. 병원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사이,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순간들을 자주 목격하게 됐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장 큰 엇갈림은 바로 '서로의 역할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에서 시작되더군요.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 사정하고, 판단하며, 간호 계획을 세우고, 독립적으로 간호를 수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환자의 전체적인 치료 과정과 컨디션을 아우르며 총체적인 간호의 책임과 권한을 가지죠. 그래서 인계 시간에는 환자의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넣고 다음 근무자에게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반면, 간호조무사님들은 간호사의 지도를 받아 간호 업무를 보조합니다. 환의 교환, 활력 징후 측정, 식사 보조 등 환자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도움을 주며 간호 업무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시죠. 이분들의 노고 없이는 간호사들이 환자에게 필요한 전문적인 간호를 온전히 제공하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서로의 업무 범위와 책임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였습니다. 제가 3-4년 차 때 그랬듯, 간호사 입장에서는 '간호사의 지시'라는 명분으로 간호조무사님의 바쁜 상황이나 업무 우선순위를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지시를 내리기도 합니다. 반대로 간호조무사님 입장에서는 '이 정도는 간호사도 직접 할 수 있는 일인데 왜 나에게만 시키지?' 하는 서운함이나 업무 과중으로 인한 불만이 쌓일 수도 있고요.
결국, 그날 아침 그 조무사님의 한마디는 단순히 환의 교환 지시에 대한 반감이 아니었던 거죠. 가장 바쁜 시간에 이미 다른 환자 케어로 정신없는 와중에, 제가 그분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눈치 없이 업무를 추가했을 때 터져 나온 무언의 불만이자, '간호사 선생님도 제 입장 좀 알아주세요' 하는 외침이었던 겁니다. 그때는 미숙해서 몰랐던, '서로 존중하며 일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날의 사건과 뒤늦은 깨달음은 저에게 큰 숙제로 남았습니다. 병동에서 마주칠 때마다 왠지 모를 어색함과 거리감이 저를 불편하게 만들었죠. '이 관계를 이대로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미숙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며, 먼저 다가가 이 어색함을 깨뜨려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느 날, 근무 교대 시간 전 잠깐의 여유가 생겼을 때였습니다. 평소처럼 바쁘게 움직이시던 조무사님께 용기를 내어 다가갔습니다. 솔직히 말할까, 아니면 그냥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할까 수없이 망설였죠. 하지만 결국 제 진심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조무사님, 지난번에 제가 환의 교환 지시 드렸을 때, 혹시 불편하셨나요? 제가 그때 조무사님 상황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너무 눈치 없이 말씀드린 것 같아서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말을 들으신 조무사님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얼굴에 조금씩 변화가 스쳤습니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선생님, 그렇게까지 신경 쓰실 줄은 몰랐네요. 괜찮아요. 그때 제가 좀 피곤해서 저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왔나 봐요. 저도 미안합니다."
그 한마디에 얼어붙었던 제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괜찮아요'라는 짧은 응답 속에 담긴 이해와 배려가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죠. 거창한 해결책이나 장황한 변명이 오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하게 제 부족함을 인정하고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상대방도 마음의 문을 열어준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때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 작은 대화 한마디가 저희 둘 사이에 존재했던 차가운 벽을 허물고, 비로소 진짜 '동료'로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만든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그 작은 대화 하나로 모든 것이 마법처럼 변한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저는 조무사님과의 관계를 넘어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모든 동료와의 관계를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20년 넘게 병원이라는 전쟁터를 지켜오면서 제가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바로 '진짜 존중'의 의미였습니다.
처음엔 '간호사는 지시하고, 간호조무사는 따르는 것'이라는 단순한 수직 관계에 갇혀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나는 간호사니까'라는 어설픈 권위 의식이 있었던 거죠. 하지만 그날의 에피소드, 그리고 솔직한 대화를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병원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함께 움직이는 '동반자'라는 것을요.
간호사는 환자의 치료 과정을 총괄하는 숲을 보는 사람이라면, 간호조무사는 그 숲을 이루는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꼼꼼하게 살피는 사람입니다. 역할과 책임은 분명히 다르지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없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서로의 노고와 기여를 인정하고 보완할 때 비로소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요.
진정한 존중은 단순히 깍듯하게 대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상황을 헤아리려는 작은 노력, 업무의 맥락을 이해하려는 시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입장만을 고집하지 않는 겸손한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저의 미숙했던 3-4년 차 시절처럼, 우리는 때로 의도치 않게 상대에게 상처를 주거나 오해를 살 수 있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은 '나'의 감정만을 내세우기보다, 잠시 멈춰 서서 상대의 바쁜 어깨, 지친 표정을 한 번 더 살펴보는 '여유'였습니다.
결국,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단순히 직책으로 나뉜 상하 관계가 아니라, 환자의 건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수평적인 협력 관계라는 것을 온몸으로 배우게 된 시간이었죠.
이제 막 병원 생활을 시작했든, 저처럼 오랜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사이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제가 20년 넘는 시행착오 끝에 얻은 '관계의 품격'을 높이는 세 가지 실천 원칙을 공유해 드릴게요. 이것만 기억해도 병원 생활이 훨씬 편안해질 겁니다.
병원이라는 특수하고 복잡한 환경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는 어쩌면 우리 인생의 축소판 같은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오해하고, 때로는 부딪히며 성장하는 과정이니까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우리 모두는 환자의 건강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는 중요한 동반자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작은 노력으로 이해의 폭을 넓혀갈 때 비로소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할미쌤의 이야기가 지금 병원에서 관계 때문에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모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선생님들께 작은 위로와 용기, 그리고 '진짜 존중'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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