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동에서 숨 가쁘게 일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바로 '의료 사고'라는 녀석이죠. "설마 나에게?", "나는 실수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수많은 변수가 존재하는 병동 현장에서 100% 안전을 장담하기란 어렵습니다. 작은 실수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든, 의료 사고는 우리 의료인들의 마음을 철렁하게 하고, 죄책감과 불안감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오늘은 의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 의료인들이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환자와 병원, 그리고 우리 자신을 위해 가장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실전 자세에 대해 현장 선배로서 진솔하게 이야기해 드리고자 합니다. 이 글이 여러분의 불안한 마음에 작은 나침반이 되고, 위기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괜찮지 않다'고 인정할 용기: 나를 먼저 보호하세요
의료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감정은 아마도 '내가 잘못했어', '큰일 났다' 하는 죄책감과 공포일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에 압도되어 무조건 숨기려 하거나,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려 해서는 안 됩니다.
감정을 외면하지 마세요: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발이 떨리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나는 괜찮다'는 착각 속에 빠지지 말고, 지금 내 감정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이러한 감정이 지속될 경우 의료인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https://survival-notes.com/entry/의료인-우울증-나는-괜찮다는-착각-자가-진단법 글을 통해 자신의 마음 건강도 함께 점검해 보세요.)
즉시 보고하고 도움을 요청하세요: 작은 실수를 숨기려다 더 큰 의료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실수를 인지한 순간, 망설이지 말고 반드시 선배 간호사나 파트장, 의사에게 즉시 보고해야 합니다. 혼자 감당하려 하지 마세요. '우리'라는 팀이 있습니다.
자책보다는 해결에 집중: 물론 죄책감은 들겠지만, 그 감정에 매몰되기보다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에 집중해야 합니다. 환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다음 단계를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확한 기록'이 곧 우리의 방패입니다
의료 사고 발생 시 간호 기록은 단순한 업무를 넘어,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됩니다. 간호 기록이 왜 중요한지 할미쌤이 '간호기록' 시리즈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드렸었죠?
사고 발생 시점부터 즉시 기록: 무엇이든, 어떤 상황이든, 사고 발생 시점부터 육하원칙에 따라 정확하게 기록해야 합니다. 환자의 상태 변화, 의료진의 조치, 환자나 보호자의 반응 등을 상세하게 남기세요. '기록이 없으면 간호도 없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객관적이고 사실 위주로: 감정적인 표현이나 추측은 배제하고, 오직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사실만을 기록해야 합니다. '환자가 화를 냈다' 같은 모호한 표현은 피하고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적습니다.
지시 이행의 연속성 확인: 의사의 지시 내용, 변경된 처방, 검사 및 치료 계획 등 중요한 내용들은 간호 기록에 명확히 남겨야 합니다. 지시 이행의 연속성이 깨지지 않도록 모든 과정이 기록에 담겨야 합니다.
환자 및 보호자 반응 기록: 환자나 보호자에게 설명한 내용, 그들의 반응(수긍 여부, 질문, 우려 등)도 함께 기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록하는 당시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나중에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분쟁에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진심'은 통하는 법: 환자와 보호자와의 소통
의료 사고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큰 충격과 불신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이때 의료인의 진심 어린 소통은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진심 어린 사과와 공감: 사고 발생 시 먼저 환자와 보호자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들의 불편함과 불안감에 깊이 공감하는 태도를 보여주세요. 감정적인 부분에 공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확하고 투명한 설명: 사고의 경위와 현재 환자 상태, 그리고 앞으로의 조치 계획에 대해 환자와 보호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명확하게 설명해야 합니다. 전문 용어 사용은 최소화하고,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케어: 사고 발생 후에도 환자와 보호자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세심한 케어를 제공하여, 이들의 회복과 안정을 돕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소한 부분이라도 신경 쓰는 모습은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의료 사고는 우리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남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 속에서도, 우리는 의료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고, 환자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그리고 우리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워나가야 합니다.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생명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해 온 강인한 의료인입니다. 스스로를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올바른 대처 자세와 동료들의 지지,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여러분의 내면의 확신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할미쌤은 여러분의 빛나는 길을 언제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