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라는 공간은 구조적으로 위계가 뚜렷한 조직입니다. 그 안에서 간호부는 독자적인 체계를 가진 부서이지만, 실제로는 '자율성'보다는 '순응'을 우선으로 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전 속도만큼 조직문화도 진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현장의 간호사들에게 아직 피부로 와닿지 않습니다. 몇몇 변화의 조짐은 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들은 지금도 조용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간호사들이 일상에서 체감하고 있는 조직문화의 핵심 특징들을 정리해 봅니다.
간호사 조직문화는 여전히 위계적
병원 간호 조직은 과거 군대식 위계문화에서 조금씩 유연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 병동에서 근무해 보면, 직급과 근무 연차에 따라 말투, 태도, 접근 방식이 여전히 다르게 요구됩니다. 특히 신규 간호사의 경우, 실수가 있어도 피드백보다는 지적 위주의 대응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위계는 단순히 상하 관계를 넘어서 ‘말을 걸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나누고, 문제 상황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없게 만듭니다. 결국 위로부터의 일방적인 전달이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이 되고, 그 아래의 목소리는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차단되곤 합니다. 물론 응급상황이나 팀워크가 중요한 구조상 일정 수준의 위계는 필요하지만, 그 선을 넘어서는 ‘권위적 분위기’가 문제입니다. 존중이 빠진 질서는 오히려 조직 전체의 대응력을 약화시킵니다.
실수에 관대한 문화가 없다
간호사 조직문화에서는 실수가 '개선의 기회'보다는 '신뢰 하락의 요소'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초심자든 경력자든, 단 한 번의 오류가 해당 간호사의 이미지 전체를 결정지어버리는 분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예를 들어 약물 투여에서의 실수, 기록 누락, 보고 지연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해당 내용을 토대로 ‘저 사람은 믿기 어렵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낙인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심지어 해당 간호사가 이후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이처럼 조직이 ‘성장을 허용하는 분위기’가 되지 못하면 개인의 발전은 물론이고, 동료 간 신뢰 형성도 어렵습니다. 실수는 무조건 감춰야 하는 일이 되고, 자기 방어가 업무보다 우선시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통은 단절되고 맙니다.
간호부 독립성, 현실은 제한적
간호사 조직문화의 중요한 맥락 중 하나는 ‘간호부가 하나의 독립된 부서로 존중받고 있는가’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아직까지 간호부는 병원 내 다른 부서와의 관계에서 의사결정권이 제한되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 인력 배치, 업무 범위, 스케줄 조정 등 실무와 직접 연관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상급자 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지시가 내려오는 구조는 여전합니다. 간호사의 업무량은 이미 포화 상태지만, 타 부서의 요청에 따라 ‘도움 요청’이라는 이름으로 추가 업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간호부 자체적으로 개선안을 제시하거나, 현장의 문제를 시스템에 반영하려고 해도 그 과정이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안’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조직문화라는 건 시스템보다 늦게 바뀌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구성원이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면, 그 구조 자체에 질문을 던지는 일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간호사의 전문성이 보호받지 못하는 조직에서는 결국 업무 효율도, 인력 유지도 장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직문화 변화, 아직은 부족하다
간호사 조직문화는 분명 과거보다 개선된 부분이 있습니다. 일부 병원에서는 수평적 회의문화나, 간호사 중심의 의사결정 과정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체 간호사들의 일상 속에 자리 잡았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고개를 저을 것입니다.
조직문화는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지만, ‘이건 원래 그래야 해’라는 침묵이 바뀌기 시작할 때 변화를 맞습니다. 간호사 조직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으려면, 내부에서 자율성을 만들고, 실수를 포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제는 단순히 외부로부터 존중을 요구하기보다, 조직 내부의 ‘문화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시점입니다. 간호사 개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조직 전체의 구조와 태도가 함께 바뀌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