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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생명 윤리, 임상 딜레마

by halmi-rn20 2025.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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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윤리 강령 선언하는 모습

 

생명은 가장 근본적인 가치이며, 간호는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한 실천입니다. 하지만 병원이라는 현실 속에서 생명은 늘 단순하게 다뤄지지 않습니다. 죽음을 앞둔 환자, 의식을 잃은 중환자, 가족의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 등 매일같이 ‘옳은 선택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반복됩니다. 간호사는 의료진 중에서도 가장 가까이에서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는 존재입니다. 그만큼 어떤 결정이 내려지기 전과 후, 가장 먼저 감정적 무게를 체감하게 되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서는 간호사가 임상 현장에서 마주하는 생명윤리 문제들과, 그에 대응하기 위한 기본적인 윤리 소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간호사 생명윤리의 현실

생명은 존중받아야 한다. 치료는 환자의 의사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이는 누구나 알고 있는 생명윤리의 기본 원칙입니다. 하지만 실제 병동에서는 이 원칙들이 때로 모순되거나 현실적인 여건 앞에서 충돌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말기암 환자가 연명을 거부할 때, 가족은 끝까지 연명 치료를 원하기도 합니다. 환자의 통증은 심해지고, 상태는 빠르게 나빠지지만 어느 누구도 결정을 내리지 못합니다. 이때 간호사는 그 사이에서 계속 돌봄을 이어가야 하며, 이 과정에서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의식이 없는 상태의 환자에게 삶을 연장하는 처치를 지속해야 할지 여부를 판단할 때, 의료팀의 입장, 보호자의 희망, 병원의 방침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간호사는 치료 과정에 직접 개입하면서도 결정권은 없기에, 책임 없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모순을 체감하게 됩니다. 이처럼 ‘무엇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간호사는 자신만의 윤리적 판단 근거를 가져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간호사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소양

생명윤리 문제에 대해 고민할수록 느껴지는 것은, 간호사의 역할은 단순한 처치자의 역할을 넘는다는 점입니다. 정확한 지식과 기술 외에도 윤리적 직관과 기준을 내면화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간호사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소양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자주 언급됩니다. 이들은 간호사 윤리강령에 반드시 명시된 항목은 아니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간호사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윤리적 기준이기도 합니다.

  • 환자의 자율성과 선택을 존중하는 태도
  • 의료정보와 개인 정보에 대한 비밀 보장
  • 환자와 가족 간 갈등 상황에서의 중립적 대응
  • 치료와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태도
  • 윤리적 딜레마를 독단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협의하려는 자세

이러한 소양은 학교나 면허증 공부만으로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병동에서 부딪히며 조금씩 만들어지고, 그때마다 선택의 이유를 정리하고 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정립됩니다. 간호사는 단순히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입장이 아닙니다. 환자의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선만큼, 그만큼 윤리적 민감성이 요구되는 존재입니다.

현실과 윤리의 간극

많은 간호사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 중 하나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 때입니다. 과연 이 처치가 환자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보호자의 불안 해소를 위한 절차인가, 혹은 병원의 지시를 따르는 ‘형식적 연명’인가. 이런 질문 앞에서 간호사는 깊은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윤리적 판단과 병원 시스템 사이의 간극도 간호사를 어렵게 합니다.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상과, 병상 회전율이나 인력 효율을 강조하는 병원 운영 시스템은 서로 충돌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간호사의 생명윤리 고민은 개인적 양심을 넘어서 의료계 전체 시스템의 문제로까지 확장될 필요가 있습니다. 정답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되, 그 안에서 ‘최선의 간호’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 그 자세야말로 생명윤리에 대한 간호사의 책임 있는 태도입니다.

결론: 생명윤리는 태도다

생명윤리는 정답을 고르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해진 기준대로 판단하면 언제나 옳은 결과가 나오는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간호사에게 생명윤리는 ‘상황을 해석하는 시선’이며 ‘선택의 순간에 중심을 잡는 태도’입니다. 병동 현장은 늘 예외적이고, 환자는 변수로 가득합니다. 그 안에서 간호사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흔들림 속에서도 누군가의 고통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려는 자세는 결코 가벼운 윤리가 아닙니다. 오늘도 현장에서 간호사는 생명과 마주합니다. 그 생명 앞에서 조금 더 성찰적이고, 조금 더 조심스럽게 판단할 수 있도록, 자신만의 윤리적 언어를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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