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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100미터 트랙 위에서 바람처럼 달렸던 소녀가 있었습니다. 온몸으로 속도를 즐기고, 오직 목표만을 향해 내달리던 아이였죠. 그 소녀는 88년 서울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뽑혀 뛰었던 경험을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꽤 자랑 같지만, 사실 체육 특기생 중에 랜덤으로 뽑힌 거라 하하, 별 건 아니었습니다. 그 소녀가 바로 저, 할미쌤입니다.
어릴 적 저는 공부와는 정말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받아쓰기에서 '빵점'을 받고, 부모님께서는 '우리 아이가 정상이 맞나' 걱정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수학은 분수만 나와도 머리가 하얘졌고, 영어는 기초조차 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장난치고 뛰어놀던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다 5학년 초, 덜컥 체육 특기생이 되면서 공부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느 날 갑자기 간호사복을 입고 병동을 누비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것도 어릴 적 기초 학력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던 제가 말이죠. 제 삶은 늘 이런 '반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반전의 순간마다 '좌절'이라는 녀석이 불쑥 찾아와 저를 흔들곤 했지만, 저는 그 속에서 기어이 새로운 길을 찾아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제 삶의 전부였던 운동을 갑자기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죠. '이제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막막함과 불안감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그때 제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는 '공부'였습니다. 평생 담을 쌓고 살았던 공부를, 그야말로 '처음' 시작하게 된 겁니다.
기초가 너무 없어서 수학과 영어는 과감하게 포기했습니다. 대신 국어, 윤리, 국사 같은 암기 과목에 목숨을 걸었죠.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던 걸까요? 결국 대학의 문턱은 제게 너무 높았습니다. 집안 형편도 넉넉지 않아 재수는 꿈도 못 꿨고, 고등학교 졸업 후 곧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무렵, 어머니의 도움으로 병원 중앙공급실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병동 물품을 준비하고 입출고를 관리하는, 요즘 말로 '병동 지원팀' 같은 역할이었죠. 그때 처음 간호사 선생님들을 봤습니다. 정말… 너무 멋져 보였거든요. 아픈 환자를 돌보고,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빛나는 그 모습. 그때부터 제 마음속에는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간호조무사 학원이라도 다녀보면 어때?" 하셨지만, 어린 마음에 '간호조무사는 시시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오직 '간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 생각 하나로, 저는 다시 주경야독을 시작했습니다. 자기 계발서를 읽으며 "나는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붙들었고, 그게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종이책을 넘기는 감성을 참 좋아합니다.
27살, 드디어 간호학과에 합격했고 같은 해에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공부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었고, 등록금까지 내주었습니다. "저 사람이 정말 내 편이구나..." 그 믿음 하나로 저는 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간호대학 생활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어린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죽어라 해도 얘네들만큼은 못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저를 또다시 덮쳤습니다. 그때 제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기초 학력의 부재'라는 그림자가 저를 끊임없이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는 죽기 살기로 공부했고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며 장학금도 받았습니다. '내가 이걸 해내다니!' 스스로 감탄하며 과탑까지 했을 때는 세상 다 가진 기분이었죠.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극적인 성취 뒤에는 항상 더 큰 허탈감이 따라왔습니다. 과탑을 하고 나면 다음 학기 성적은 내리막길을 걷곤 했고, 블로그 스킨 변경처럼 큰 기술적인 성공을 이뤄낸 뒤에도 자신감이 뚝 떨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왜 항상 이럴까?' 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니 이게 저의 특성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일을 과감하게 포기해 버리는 습관. 때로는 '그때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언제나 '남들은 다 안된다고 해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면 반드시 답이 있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존재합니다. '한글 알고, 알파벳은 아니까 남들보다 10배, 20배 더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믿음. 해결되지 않는 일도 며칠을 고민하다 보면 기어이 해결책이 떠오르는 신기한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이런 집요함은 때로 주변을 피곤하게 할 수도 있지만,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근 NLP(신경언어 프로그래밍)를 접하면서, 제가 가진 이러한 패턴, 즉 '강한 확신과 집요한 문제 해결'이 심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 이게 NLP와도 연결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번뜩였습니다.
이제 저는 병원을 사직하고 '수익형 블로거'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죠. 물론 HTML, CSS 같은 코드의 벽에 부딪히면 여전히 '내가 이걸 정말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압도감과 함께 '이 복잡함을 언제 다 익히지?' 하는 공포가 밀려오기도 합니다. 마치 제가 너무 과속하는 건 아닐까 하는 후회가 찾아오기도 하죠.
하지만 제 마음속에는 여전히 식지 않는 도전 정신과 배움에 대한 의지가 가득합니다. 병원 밖 세상은 낯설고 때로는 불안하지만, 저는 저의 강점인 '문제 해결 능력'과 '집요함'을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병동에서 쌓은 경험은 단순한 경력이 아닙니다. 수많은 환자와 동료를 마주하며 얻은 지혜, 공감 능력, 위기 대처 능력은 그 어디서든 빛을 발할 수 있는 값진 자산입니다.
저는 충분한 쉼이 끝나면, 언제든지 다시 병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제 경력을 바탕으로 다시 현장으로 갈 수 있고, 아니면 블로그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며 저만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도 있겠죠. 이 모든 과정은 결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인 것입니다.
인생은 늘 예측 불가능한 굴곡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저처럼 어릴 적 좌절을 겪고, 뜻밖의 길을 걷고,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든 분들께 저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 혼자 있어도 웃는 법.
늦었다고 느낄 수는 있어도, 너무 늦은 건 없더라고요.
조금 더디게 걸어도 괜찮아요.
그 길 끝엔, 생각보다 멋진 '나'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할미쌤은 여러분의 모든 고민과 용기 있는 도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만의 길을 의미 있게 만들어갑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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