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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간호사가 천직이세요.”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어떠신가요?
음, 저는 솔직히 쓴웃음부터 지어집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병원 밥을 먹으며 제가 이 일을 사랑했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하겠지만… 과연 이것이 '천직'일까요?
간호학과에 처음 들어갔을 땐,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의 손을 잡아주던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치유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 뛰어드니,
그 꿈같은 그림은 온데간데없고 3교대 근무의 늪과 끝없이 밀려드는 환자 차트,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의 연속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제 직업을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왔습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겨우겨우 출근했는데, 환자 보호자분께서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실 때.
"간호사가 그것도 모르냐!"는 말에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울컥하는 감정은 어쩔 수 없더군요.
혹은, 주말에 모처럼 쉬는데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을 때.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서도 머릿속은 온통 병원 일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럴 땐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고 있지?'라고 말이지요.
20년 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맸지만,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천직은 없습니다'라고요.
완벽하게 나에게 맞는 직업은 없으며, 우리가 하는 일은 그저 업무가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때로는 좌절하고, 때로는 감동하고, 때로는 회의감을 느끼며… 그렇게 매일이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의 연속이지요.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직업적 성숙'을 이뤄간다는 것입니다.
환자의 작은 미소에 위로를 받고, "선생님 덕분에 살았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다시 힘을 얻고,
지독한 악순환 같던 업무 속에서도 나름의 노하우와 요령을 터득하며 우리는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그렇게 저는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견뎠고, 이젠 잠시 현장을 떠나 있어도 여전히 병원 현장이 그리운 걸 보면…
아마도 이 일이 제 삶의 일부가 되어버렸나 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후배님들께 해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을까?"라는 고민이 들 땐, 너무 자책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입니다.
모두가 똑같은 고민을 하며 이 길을 걸어가고 있으니까요.
그저 오늘 하루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자신을 돌보는 일이니까요.
오늘 하루도 묵묵히 걸어온 우리 선생님들이 새삼 참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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